우리나라 '최초의 복권'이 발행되자마자 '완판'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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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은 대박의 꿈을 가지고 즐기는 복권!  자주 하시나요?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복권은 올림픽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죠.

올림픽 역사를 보면 전쟁으로 인하여 세 차례 대회를 개최하지 못하는데, 1916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기로 했더 대회가 취소되었습니다.


그리고 1940년 일본 도쿄대회와 1944년 영국 런던에서 열리기로 한 제14회 대회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열린 올림픽 대회가 바로 1948년 영국의 런던올림픽인데 이때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로 하계올림픽에 처음으로 출전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에 우리 선수들이 출전하는 과정은 그렇게 순탄하지 만은 않았습니다.


1945년 해방된 그 해 조선체육회가 생기고 이듬해인 1946년부터 올림픽대책위원회가 설립되었고, 이후 올림픽 참가 교섭을 벌였지만 예기치 않은 사건들이 발목을 잡았던 것입니다. 


조선체육회 부회장이 IOC(국제올림픽위원회) 회원국이 되기 위해 신청서를 들고 가던 중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지고, 선수 선발을 둘러싸고 체육회 간부들이 총사표를 내고, 게다가 경비 부족분을 런던으로 전송하자는 국회 발의가 나오기까지 했었습니다.


특히 해방 직후의 나라에서 70여명의 선수단을 런던에 보낸다는 것은 당시에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1인당 경비 2,000달러와 그 외 유니폼 값 15만원 등의 비용을 충당하기에 당시 한국의 재정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에 부딪힌 올림픽 참가의 희망의 빛이 된 것은 다름아닌‘복권이었습니다.


런던올림픽 선수촌


런던 올림픽에 파견할 대표선수단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올림픽후원회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복권인 ‘제 14회 런던올림픽 후원권’을 발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947년 12월 1일부터 만 두 달 동안 단식으로 발매했던 후원권은 액면가 100원 짜리로 발행매수는 140만 장이었습니다. 


당첨금은 1등의 경우 1백만 원 한 장, 2등은 50만 원 두 장, 그리고 3등은 1십만원 한 장이었습니다. 


당시 집 한 채 값이 100만원 정도였으니, 그 가치가 꽤나 상당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권 후면에

"본권은 1948년 런던 올림픽에 파견할 대표단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각 도와 서울시를 단위로 한 각 지구에서 발행함"이라고 명기된 발행 목적은 국민들의 감동을 자아내고 성원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복권은 순식간에 다 팔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익으로 대표단은 무사히 런던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역도의 '김성집'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 오른쪽의 이화여중 '박봉식'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한 최초의 여자선수가 됐다.


복권의 시작은 이처럼 우리나라 대표선수단이 1948년 런던올림픽에 참가하길 바라는 희망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복권사업은 이재민 구호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후생복표, 산업부흥자금 및 사회복지자금 조성이 목적인 애국복권 등 성공적인 공익사업기금 조성을 위해 발행되어 사회발전에 공헌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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