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 8차, 향숙이를 불렀던 그는 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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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8일에 DNA 대조로 유력 용의자 이춘재가 특정되고, 2019년 10월 1일 조사에서 이춘재가 화성 연쇄 살인사건 범행을 자백하였다.


이로써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 중 제일 큰 화성 연쇄 살인사건은 결국 과학수사의 발전과 형사들의 노고 끝에 미제 사건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으나, 다만 형사소송의 공소시효가 2006년 4월 2일부로 모두 만료되어, 현재로서는 해당 용의자가 진범으로 확정된다 하더라도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없는 안타까운 사태로 남게 되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 이춘재(56)가 1988년 여중생이 살해된 ‘화성 8차’ 사건 또한 자신의 소행이라고 밝힌 사실이 알려진 최근, 교도관 A씨는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이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된 윤모(당시 22세)씨였다. 그는 이미 20여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상태다. 윤씨는 재판 과정에서 무죄를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만일 이춘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윤씨는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게 된다. 그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애는 교도소에 들어왔을 때부터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해왔다. 청주교도소에서 윤씨를 아는 수형자와 직원들 사이에서는 ‘무죄인데 억울하게 들어온 애’로 통한다. 이춘재가 진범으로 밝혀진 지난달 19일, 윤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형님 뉴스 보셨어요’ 하더라. 이번에는 정말로 무죄를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고문을 당해서 허위 자백을 한 거다. 잠을 재우지 않고 엄청나게 많이 맞았다는 식으로 윤씨가 이야기를 했다. 자백을 안하면 죽을 정도의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실제로 그 당시 화성 사건 수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나. 가혹 수사로 죽거나 자살한 사람도 있다. 지금도 그 애는 자신을 고문한 형사와 기소한 검사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한다. 항소심에서 고문 사실을 알렸지만 증거가 없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애가 순진하고 어벙벙하니까 이용당한 거라 생각한다. 윤씨는 고아에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았다. 돈 없고 빽 없으니 변호인도 제대로 쓸 수 없었고 어떻게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지 몰랐다. 가혹 행위를 당해도 경찰에 달려가 ‘왜 우리 애 고문시키냐’며 난리쳐줄 부모가 없는 거다. 



술담배도 일체 안하고 돈도 악착같이 벌어서 모조리 저금했다. 아는 게 없으니까 봉제 기술을 배웠는데 12시간씩 교대 근무하고도 불만 한 마디 없었다. 오히려 잔업 없어서 돈 덜 버는 걸 걱정했다. 얘가 누나들 수술비랑 조카들 학자금도 대줬다. 애가 성실하고 착하니까 교도소 내의 다른 재소자들도 윤씨에게 먹을 거 사주고 많이 도와줬다. 그러니까 모범수로 분류돼서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될 수 있었던 거다. 


이번 사건이 터지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왔는데 아직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한다. 신상이 이미 많이 퍼졌기 때문이다. 내가 최근에 ‘야 너 19년 6개월 동안 수감됐었으니까 무죄 인정받으면 형사보상금 두둑히 받을 거야’ 위로했더니 윤씨가 ‘형님, 저는 명예를 회복하고 싶은 거지 돈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 조용히 변호사를 구하는 중이다.


[참고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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